성공의 최상위 원칙 '처음처럼'

우울한 것은 패자가 아니라 승자를 만날 때다. 패자를 만나게 되면 격려를 하면 그만이지만 승자를 만나게 되면 여러 가지 상념이 교차하게 된다.


필자의 마음을 복잡하게 하는 것은 특히 승자 중에서도 도(道)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가야할 길을 잃고 헤매지만 그동안 쌓아놓은 업적으로 아직은 기고만장해지는 사람들이 더욱 심사를 어지럽힌다. 정상에 서있다고 착각하는 그들을 보면 그 오해가 너무도 잡스럽다.

A 치킨 프랜차이즈 B대표는 항상 기고만장이다. 2,3년 새 가맹점이 대폭 줄어들었지만 별게 아니라는 자세다. 아연했다. '별게 아니라니, 프랜차이즈가 가맹점이 줄어든다는 모양이 별게 아니라니, 정신이 나가도 한참 나갔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필자를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만의 세계를 열변했다.

"지금 당장은 힘들지만 조만간 다시 정상화 될 테니 걱정할 것 없다"는 상투적인 멘트가 꼭 따라 붙었다.

그 모양이 너무 답답해 필자가 한번은 야무지게 쓴 소리를 날렸다. 한동안 연락이 두절됐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다시 만났다. 다소 기가 죽은 모양새지만 정상타령은 여전 했다. 그리고는 한마디 보탰다.


"처음처럼 시작하겠다."

처음 듣는 단어는 아니지만 가슴이 덜컹했다. '처음처럼'이 그렇게 쉽게 내뱉어지는 게 이상했다. '처음처럼'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사업이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 한참동안 생각에 잠겼다. 우울한 하루였다.

B대표를 만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국내 굴지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C대표를 만났다. 수년전 첫 만남의 싱싱함이 사라진 것은 알았지만 이지경이 됐는지는 몰랐다. 대화의 요지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필자가 애써 대화의 방향을 틀어놓으면 어느새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돈, 돈, 돈이었다. 돈 많은 사람의 돈 얘기는 싱싱하지 못하다. 구태다. 심지어 구린내가 난다. 장삼이사(張三李四)의 그저 그런 얘기만도 못하다.

돈 많은 사람의 돈 많이 버는 얘기를 듣다가 처음 C대표를 만났을 때를 기억해냈다. '당시도 그러했는데 필자가 몰랐을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분명히 말하자면 당시는 싱싱했다. '처음처럼' 생생했다.

연달아 일어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주일 상관에 '처음처럼'이란 단어를 깊이 생각 해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울한 한주였다.

어려운 것은 어떻게 해서든 지키려고 한다. 심지어 없으면 빼앗으려고도 한다. 그러나 쉬운 것은 지키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흐르는 대로 지켜본다. '너무 쉬워서 지키기가 어려운 게' 인간의 약점이다.

'처음처럼'은 말은 쉽다. 누구나 쉽게 말한다. 말하는 기세로 보아서 누구나 지킬 것 같다. 그러나 그뿐이다. 거의 대다수가 그렇다. 그래서 지키기가 어려운 원칙이다. '너무 쉬워서 지키기가 어려운 게' '처음처럼'의 오묘한 진면목이다. '처음처럼' 원칙이 지켜지기가 어려운 것은 왜일까. 성공은 술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성공은 서서히 취하는 술이다. 서서히 취하기 때문에 잠깐의 방심으로도 처음처럼의 원칙이 무너지는 것이다. 성공이란 그렇게 사람을 혼미하게 하는 법이다.

'처음처럼' 원칙은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다. 승자와 패자를 가른 길목에 자리한 것은 '처음처럼'이다. 또 상위 10% 승자와 나머지 승자를 가르는 것도 '처음처럼'이다. '처음처럼'의 존재여부가 승자와 패자를 나누고, '처음처럼'의 지속여부가 상위 승자와 하위승자를 분별한다. 이건 굳건한 원칙이다. 다이아몬드보다 굳건하다. 어떠한 유혹, 조건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처음처럼' 원칙은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민초들의 삶에도 여실히 등장한다. 역사적 사례로는 당나라 태종과 현종을 들 수 있다. 당 태종은 일생동안 초심을 유지하며 나라를 다스렸다. 그는 평온할 때일수록 더욱 긴장했다. 그래서 중국의 4대 태평성세기인 '정관의치(貞觀之治)' 시대를 열었다.

반면 당 현종은 '처음처럼' 원칙을 저버린 대표적 사례다. 그가 즉위 했을 때 정치에 전념, '개원의치(開元之治)'라 불리는 태평성세를 이뤘다. 그러나 그는 시간이 지나자 정치에 싫증을 느꼈다. 그런 그를 사로잡은 것은 자신의 며느리였던 양귀비였고, 나라와 백성을 등한시한 나머지 결국 나라가 멸망하게 됐다.

현종과 같은 사례는 세계역사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반복돼 왔다. 이 같은 사례는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비즈니스세계도 방심은 금물이다.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때일수록 더욱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처음처럼'의 원칙을 견지한 세계적인 기업인은 GE의 전 CEO 잭 웰치다. 그의 말을 이를 정리해보자.

"나는 하나도 변한 게 없다. 생각은 항상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우리는 시작할 때부터 현실 스피드 주인의식 정직에 대해 이야기 해왔다.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을 단순화시켰고 좀 더 명확하게 표현하려 했다."

'처음처럼'과 관련, 국내 외식 창업시장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CEO로는 하누소의 장세은 대표, 띠아모의 김성동 대표, 아시안푸드의 조미옥 대표 등이다. 이들과의 대화는 항상 처음에 만났을 때와 연결돼 있다. 보이지 않는 그 어떤 맥이 흐르는 느낌이다.

갈비탕명가를 이룬 하누소의 장 대표는 지금도 만나면 새롭다. 먼저 배움을 청하고 대화를 나누는 폼새를 비단 필자만 느낀 게 아니다. 새로운 브랜드를 준비하는 지금도 본사를 찾아가면 처음 외식시장에 뛰어들 때의 마음가짐을 갖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젤라또 아이스크림 카페 띠아모의 김 대표는 '처음처럼'을 가장 중시한다. 처음 마음가짐이 무너지는 순간 자신도 무너진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직원들은 편히 잘 수 있으나, 저는 발을 뻗고 잘 수가 없습니다."

성장할수록 더욱 긴장감이 든다는 말이다. 40이란 나이에 쟁쟁한 카페시장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김 대표의 솔직한 고백이다.

중식전문 프랜차이즈 아시안푸드의 조미옥 대표는 물량위주의 성장을 지양하는 CEO 중의 하나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믄 프랜차이즈 CEO다. 회사가 어려울 때나 잘나가는 지금에나 대화의 톤이 항상 같다. 성장보다는 중식문화의 전파가 그녀의 목표이자 사업의 방향이다.

이들 외에도 거론할 CEO들이 더러 있다. 이들 CEO들이 승승장구하는 것이나, 위기의 상황에서도 매번 일어설 수 있는 것은 모두 '처음처럼'의 마음을 견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특히 성공했을 때 '처음처럼'을 잊지 않는 것은 평범한 경지가 아니다. 비범한 경지다. 보통사람으로서는 이경지에 오르기가 힘들다. 그러나 힘들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승자가 되는 길이 어디 쉽겠는가. 방편을 하나 소개하겠다. 앞서 당태종 애기를 했다. 그는 태평성세인데도 평생 긴장했다.

'항시 긴장하라. 그리고 그 긴장감을 유지하라.'

<정 보 철>

-전 매일경제신문 기자
-전 파이낸셜 중소기업부장
-'외식경영' 편집주간
-저서: '외식산업의 리더 9인의 성공법칙' '송추가마골 김오겸 회장의 성공신화' '이기는 사람은 생각부터 다르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