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받아 연명 '막장인생' 는다

머니투데이

권화순 기자

"애들 학원비 대기도 빠듯한 월급인데 그나마 두달 넘게 못받고 있어요. 급하게 빌려 쓴 대출이자도 못갚아서 꼼짝없이 신용불량자 신세가 될 뻔했습니다."

L씨는 서울 영등포에 있는 의료기기 판매업체에서 일한다. 경기침체로 개업은커녕 문닫는 병원이 속출하자 매출이 급감했다. 몇달째 월급을 못받아 생활비가 바닥난 L씨는 기업은행에서 낮은 이자로 '생활안정자금'을 빌리곤 한숨을 돌렸다.

25일 금융계에 따르면 기업은행의 '생활안정자금' 대출실적이 최근 크게 늘고 있다. 지난달에만 모두 3028명이 빌려 썼다. 지난해 10월과 11월은 각각 809건, 523건에 불과했으나 12월에 1361명으로 늘었다. 올들어서는 이용자가 폭증했다.

2개월 이상 임금 체불자가 근로복지공단에서 보증서를 발급받으면 700만원까지 빌릴 수 있다. 이자는 2.4%로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금리인 5~12%에 비하면 파격적으로 낮다.

대출실적이 늘어난 것은 경기침체로 임금 체불자가 급증한 탓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기업의 월평균 임금 체불액은 726억원(1만9000명)이었으나 11월에 931억원(2만4000명), 12월엔 1075억원(2만7000명)으로 늘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경기가 본격적으로 나빠지기 시작한 지난해 말부터 '생활안정자금' 이용자들이 크게 늘었다"며 "보증서만 발급받으면 인터넷으로 대출신청이 가능해 이용절차도 간편하다"고 말했다.

실직자 가정을 대상으로 한 '생활안정자금' 대출도 활발하다. 지난 3일부터 실시했는데 23일 기준으로 876명이 51억원을 빌렸다. 노동부 고용지원센터에서 구직등록을 한 후 3개월이 지난 실업자라면 600만원까지 연 3.4%의 금리로 빌릴 수 있다.

이밖에 실직자와 비정규직도 지원대상이다. 재원은 모두 근로복지공단이 마련했다. 수요는 폭증하지만 재원이 한정된 탓에 신용불량자들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따로 홍보하지 않아도 입소문을 타고 대출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면서 "경기가 안좋아 마음까지 각박해져서 그런지 예전엔 간간이 '감사편지'가 왔는데 요즘엔 그런 것도 뚝 끊겼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