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외투기세력, 외환보유고 노린다

이 기사는 09월03일(17:49)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달러/원 환율이 이번 주에만 60원 가량 폭등하고 시장 변동성이 확대되자 해외투자은행이 앞장서서 외환보유고를 통한 시장 개입을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환율 급등을 이끈 주체가 역외세력들인데 이들이 앞 다퉈 환율을 끌어내리라고 주장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외환당국이 환율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달러를 매도하면 역외세력들이 저가로 달러를 매수해 환율 하락 효과를 무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3일 UBS는 달러/원 환율 전망치를 기존 1075원에서 1300원으로 상향 조정하고 외환보유고에서의 달러 매각이 없으면 원화 약세가 예상보다 더 빨리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개입이 없으면 환율 급등세가 진정되지 않고 원화 가치가 계속 하락할 것이란 분석이다.

다른 해외IB들도 달러/원 환율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며 환율 상승 제한에 적극적이지 않는 외환당국의 개입 여력에 의구심을 던지고 있다.


서울외환시장 참가자들은 해외IB들의 이러한 주장에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현 시점에서 정부가 외환보유고를 풀어 환율을 끌어내리면 큰 손해를 보는 쪽은 오히려 9월 환율 폭등을 주도한 역외참가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전문가들은 역외세력들의 진짜 목적은 환율 상승을 조장해 외환당국의 외환보유고 매도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이다.

즉, 지금 서울외환시장에 들어 온 역외투기세력들은 환율 등락에 따른 단기차익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당국의 실탄이 소진되어 더 이상 시장 개입이 어려워지고 환율이 오버슈팅 하는 시점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외환시장 전문가는 "역외투기세력들의 목표는 한국 정부의 가용외환보유고"라며 "현 상황에서는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금은 달러를 매도하는 쪽이 지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그는 "당국이 원화 약세를 막기 위해 달러 매도 실 개입을 단행하면 역외세력들은 계속 그 매도 물량을 되살 것"이라고 말했다. 외환보유고 매도가 환율 하락을 유도하기 보다는 외환보유고를 그대로 역외투기세력들에게 가져다주는 꼴이 될 것이란 설명이다.

이 전문가는 "그 동안 외환당국이 지나치게 적극적인 개입을 단행하면서 오히려 투기세력들의 투기 심리를 조장했다"면서 "현재 헤지펀드 등 투기세력들이 노리는 것은 환율 추가 상승에 따른 차익실현이 아니라 외환당국의 주머니"라고 경고했다.

그는 "투기세력들로 인해 자국의 통화 가치가 폭락한 사례인 지난 1992년 9월 16일 영국의 블랙 웬즈데이를 잊어서는 안된다"며 "뻔히 드러나는 시장 개입은 자제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블랙 웬즈데이는 영란은행이 환 투기세력인 조지소로스에 맞서 파운드의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외환보유고 280억달러를 쏟아 부었지만 결국 실패하면서 투기세력들에게 항복한 날이다. 영란은행은 블랙 웬즈데이 1달 전부터 파운드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시장에 이미 400억 달러를 매도하는 등 적극적인 개입을 단행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