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의 범람]④'ABCP공장' 콘듀잇 전성시대

이 기사는 06월22일(11:11)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금융회사의 장부상 회사인 콘듀잇(Conduit)이 자금시장 교란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 2003년부터 은행을 중심으로 활성화된 콘듀잇은 금융시장 불안 때마다 문제점을 노출했다. 하지만 좀처럼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금융회사의 자산 확대 정책, 사모사채 규제의 탈출구 등으로 콘듀잇 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발행된 콘듀잇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 전체 CP 잔액의 20%에 달하고 있고 그 규모가 매년 100%씩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콘듀잇은 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자산유동화법이 아닌 상법에 근거한 콘듀잇은 공시 의무조차 없다. 감독당국에는 공식적인 통계도 없는 실정이다.

콘듀잇 ABCP 발행, 매년 두 배씩 증가


신한은행이 지난 2003년에 '골드윙'이라는 콘듀잇을 설립한 이후 은행권의 ABCP 발행이 빠른 속도로 늘기 시작했다. 우리은행, 농협 등도 콘듀잇을 세웠고 최근에는 증권사들까지 가세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5월말 현재는 콘듀잇의 ABCP 잔액은 13조원으로, 2004년 말 1조5000억원에서, 2006년 말 6조3000억원으로 매년 100%씩 증가하고 있다.

ⓒ한신정평가

2007년 말 콘듀잇은 은행이 8개, 증권사가 12개로 총 20개가 세워져 있다. 이 가운데 활동을 멈춘 세 곳을 제외하면 17개의 콘듀잇이 ABCP를 찍고 있다.

콘듀잇, PF 대출 감추고, 수익도 얻고

콘듀잇의 ABCP 발행이 급증한 데는 자산확대 수단으로 이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보유 자산을 콘듀잇으로 매각하면 은행 대차대조표에서 제외돼 회계상 자산 규모를 가릴 수 있다. 이 때문에 건설 PF 대출 등 위험성이 있는 자산을 은행 회계 장부에서 감출 수 있는 수단으로도 활용됐다.

자산은 늘렸지만 감출 수 있게 됐고, 부외자산에는 50%의 위험가중치만 적용받게 돼 금융회사 입장에서 콘듀잇의 활용가치는 확대됐다. 부실 가능성이 있는 자산을 떨어냄으로써 금융회사의 자산 건전성 개선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콘듀잇 골드윙의 기초자산은 회사채와 ABS, PF 대출로 구성돼 있고 미래든(신한은행), 아리랑에스에프(농협)도 같은 자산 구성을 보이고 있다.

외형상 이점과 함께 장단기 금리차와 신용스프레드는 금융회사의 이익으로 고스란히 떨어진다. 콘듀잇은 금융회사가 100% 출자해서 만든 회사이기 때문이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콘듀잇은 효자로 자리 잡았다.

콘듀잇, 사모사채 규제의 탈출구

콘듀잇은 공모채권 시장을 잠식했다. 정부가 은행이 인수하는 사모사채에 대해 신·기보 출연료를 부과하자 기업은 사모사채를 통한 저금리 조달이 어렵게 됐다. 그러나 콘듀잇을 통하면 사모사채의 장점을 고스란히 유지시켰다.

지난해 9월과 11월에 설립된 빅팟2007에는 총 1조4650억원의 채권과 기업어음이 담겼다. 이 중 대한한공과 한진중공업을 비롯한 주요 기업의 사모사채가 8350억원에 달했다. 정부의 공모사채 활성화 취지가 콘듀잇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채권이 콘듀잇에 잠기면서 CDO 유동화가 급증했다. 한신정평가에 따르면 CDO를 기초자산으로 한 2007년 ABCP 발행은 69건 , 9조742억원으로 전년 28건, 2조9876억원에 비해 건수로는 두 배, 규모로는 3배 이상 증가했다.

김주헌 한신정평가 연구원은 "은행을 중심으로 차익거래 이익 및 자금조달 목적으로 콘듀잇을 활용하는 사례가 증가했으며, 특히 CDO 유동화의 대부분이 콘듀잇을 통해 이뤄졌다"고 말했다.

콘듀잇, 유동화 시장을 바꿔놓다..자산유동화법 사문화

콘듀잇을 통한 ABCP 발행은 CP의 증가뿐만 아니라 자산유동화법까지 무력화시키고 있다. 유동화시장은 상법상 시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지난해 자산유동화법(MBS포함)에 근거해 발행된 유동화건수는 전체의 24.5%로 떨어졌다. 지난 2005년에는 68.1%에서 3년 만에 3분의 1로 급감한 것이다. 반면 상법상 유동화는 2005년 31.9%에서 2007년에는 75.5%까지 폭증해 콘듀잇이 자산유동화시장을 점령했다.

ⓒ증권업계, 단위 :10억원

특히 감독당국이 건설사의 자산유동화 부실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을 차단하기 위해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 조건을 강화하면서 ABS로 나올 것들이 ABCP로 급격히 이동했다. 설립절차가 간편하고 공시의무도 없는 낮은 규제 수준은 콘듀잇의 매력을 배가 시켰다.

"콘듀잇, 공시 의무 지워야"

감독 사각지대에 있는 콘듀잇을 규제해야한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사전적으로 공시 의무 등을 지워 금융시장 불안이 고조될 때마다 콘듀잇에 대한 불안감을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목소리는 금융시장 전문가 뿐 아니라 한국은행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김훈 한은 금융산업팀 차장은 한 보고서를 통해 "콘듀잇은 자산유동화법상 등록 의무가 없는 경영 투명성이 미흡한 데다 단기 ABCP 방행 확대로 만기 도래시 차환 발행 가능 여부에 따라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차장은 "콘듀잇의 ABCP 발행 정보를 자산유동화법에 의한 유동화전문회사에 준하는 수준으로 공시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